양화진문화원-홍성사,『로제타 홀 일기 4』출간
결혼과 평양 선교, 남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록
한국에서 2대에 걸쳐 77년 동안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홀 선교사 가족 중 가장먼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한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육필일기 『로제타 홀의 일기 4』가 양화진문화원과 홍성사에 의해 출간됐다.
이번에 출간된 『로제타 홀 일기 4』에는 로제타가 서울에서맞은 세 번째 해인 1892년 3월 8일부터 1894년 10월 1일까지, 약 2년7개월 동안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로제타는 1890년 10월 14일선교목적지인 서울에 들어왔고, 이후 선교지의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의료 활동에 진력했다. 미국을 떠나 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내한 다음해의 행적은 『로제타 홀 일기1』과 『로제타 홀 일기 2』『로제타 홀 일기 3』에담겼다.
이번에 출간한 『로제타 홀 일기 4』는 자신을 뒤따라 한국에온 윌리엄 홀 선교사와 함께 한 약 3년 동안 기록한 일기이다. 따라서『로제타 홀 일기 4』에는 윌리엄 홀과의 결혼과 평양 선교 개척과정,그리고 남편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그 과정에서 겪은 스크랜턴등 동료 선교사와 에스더를 비롯한 한국인 조력자 사이에 겪은 경험이 아주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다.
로제타 선교사의 결혼과 출산, 육아
로제타와 윌리엄 홀 선교사는 1892년 6얼 27일, 서울에서결혼했다. 영국공사관과 미국영사관에서 두 번의 결혼식을 거행했다. 이는윌리엄 홀은 영국인(영국령 캐나다)이었고, 로제타는 미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중국 즈푸로 약 한달 동안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로제타의 결혼에는 한 번의 고비가 있었다. 로제타는 미국북감리회 여성해외선교회(W.F.M.S)의 후원을 받아한국에 왔다. 당시 여성해외선교회는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할 때 미혼으로 최소 5년간 사역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런데 로제타가 이 약속을어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동안 받은 선교사 경비를 반환해야 해야 했으며, 그녀를 선교사로 추천한 이들과 심각한 오해와 갈등이 빚어졌던 것이다. 그리고윌리엄 홀이 결혼 3개월 만인 1892년 9월에 평양 개척 선교사로 임명됐으며, 이후 약 1년 동안 윌리엄은 평양에서, 로제타는 서울에서 서로 떨어져서 선교사역을감당해야 했다.
로제타는 1893년 11월 10일, 첫아들인셔우드를 낳았다. 출산을 약 한 달 앞두고 로제타와 윌리엄 홀 부부는 모두 평양 선교사로 임명받았다. 결혼 1년 반 만에 부부가 함께 평양에서 선교사역을 할 수 있게된 것이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평양에서 일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다. 평양 개척 사역에 대한 윌리엄 홀과 한국 담당 감리사였던 스크랜턴 사이의 견해차로 인해 갈등이 적지 않았다. 한겨울에 평양에 가야 한다는 스크랜턴과 평양의 상황이 어렵고 매우 추우며, 자녀출산으로 인한 상황을 감안해 봄부터 평양에서 사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홀과의 견해 차이에서 로제타는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갓 태어난 셔우드가 자주 아파서 로제타는 여러 면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로제타는 육아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그것은 셔우드와 나중에 태어난에디스가 스스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육아일기를 꼼꼼히 기록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양화진문화원은셔우드와 에디스 육아일기를 2017년 중 번역, 출간할 계획이다.
김창식 목사와 에스더에 대한 기록들
『로제타 홀 일기 4』에는 김창식 목사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에스더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로제타의 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믿음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평양 선교 초창기 발생한 ‘평양 기독교인 박해 사건’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그런데 그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겪은 로제타는 일기에 당시 상황을 매우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로제타는 윌리엄 홀과 마펫 선교사의조사로 함께 평양에 갔던 김창식의 행동에 대해 ‘순교자와 같았다’고기록할 정도로 좋게 평가하고 있다. 1894년 5월 11일 일기에서 로제타는 김창식을 ‘한국의 바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마도 후일 김창식 목사가 이 같은 별명을얻게 된 것도 로제타 일기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로제타는 이렇게 기록했다.
감사가 이렇게 늑장을 부리며 전보에 적힌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있으니 그가 풀려나기 전에 죽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의사 선생은 창식을 보러 갈 때마다 그 광경이 너무 처참하여 울고 만다. 그들이창식을 오 씨나 한 씨보다 더 심하게 때리고 위협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불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풀려나면 복음 전파를그만 두겠느냐는 물음에도 계속 전파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바울’(Korean Paul)로 인해 주님께 찬양을 드린다! (1894년 5월 11일 일기에서)
에스더는 로제타가 서울 보구여관에서 사역하게 된 직후 보조자로 만난 이후 우리나라 최초 여성 의사가된 후에도 동역했다. 따라서 이 일기 속에 가장 자주 그리고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에스더이다. 아울러 처음 만난 순간부터 평양 사역에 동행하기까지 주고받은 대화와 편지도 상당수 수록되어 있다. 로제타는 일기에서 에스더의 믿음이 커가는 과정, 결혼에 이르게 된과정을 아주 소상히, 애정 어린 눈으로 기록했다. 선머슴같았던 김점동이 김에스더를 거쳐 박에스더가 되는 신앙의 역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소녀에게 일어난 영적 성장은 실로 놀랍다. ... 에스더는성경 공부도 하는데, 성령께서 스승이 되어 그녀를 가르치시는 것이 분명하다. 이해도 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무척잘한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서 분별력이 있고 현명하다. 그런데그것이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이 씨 부인까지도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질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랑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 하지만 에스더의 인격의 깊이는 그녀를 잘 아는 사람만 공감할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외모나 태도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는 절대로 깊은 인격의 소유자로 보이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는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1893년 3월 28일 일기에서)
윌리엄 홀의 순직으로 끝내지 못한 로제타 일기
『로제타 홀 일기 4』는 1894년 10월 1일 일기로 끝난다. 그런데 이 일기는 미처 마치지 못했다. 로제타는 스물아홉번째 생일인 1894년 9월 19일 일기에서 에스더 부부로부터 생일 축하 편지를 받고 윌리엄홀로부터는 비취 조각이 달린 예쁜 베갯모 선물을 받았으며, 가족들과 생일파티를 했다는 즐거운 내용으로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평양에서 청나라와 일본의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이 없다면 곧바로 평양으로 돌아갈것이라며 일기를 마쳤다. 일기 중간에는 조선에서 시작된 청일전쟁의 소식을 들은 고향 가족들의 우려하는편지를 받았음도 밝히고 있다.
윌리엄 홀은 마펫 목사와 함께 10월 1일 다시 평양으로 떠나 6일에 평양에 도착했으며, 8일 서울에 있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냈다. 10월 1일 일기는 이 내용을 적은 후 끝난다. 청일전쟁 상황이 치열해지고평양에 있던 선교사들이 서울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윌리엄 홀은 전염병에 걸렸고, 서울에 온 지 1주일만인 11월 24일순직하는 등 급박한 상황 속에서 로제타의 일기는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로제타는 10월 13일 자신에게 도착한 윌리엄 홀의 일기를 자신의 손글씨로옮겨 적어 일기 뒤에 붙여놓았다. 결국 로제타 홀의 일기는 남편 윌리엄 홀의 편지로 끝을 장식하게 되었다. 윌리엄 홀이 로제타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한 구절을 소개한다.
평양은 거의 죽은 도시 같구려. 한국인들이 막 돌아오기 시작했소. 그들 모두가 이곳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있으며, 우리는 사역에큰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오. 땅이 부드러워져 옥토가 되었기에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믿고 있소. 주님을 위한 우리 사역에서 지금보다 더 희망적으로 보인 적이 없소. 우리가이곳에 있다는 게 기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줄 믿는다오.(1894년 10월 8일 윌리엄 홀의 편지 중에서)
2017년까지 『로제타 홀 일기』 시리즈 6권 모두 출간 예정
『로제타 홀 일기』 시리즈는로제타 홀이 한국으로 파송된 1890년부터 의료선교사로 함께 헌신했던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이 소천한 1894년까지 약 5년 동안의 기록을 적은 것으로 선교일기 4권과 두 자녀(셔우드와 에디스)의성장과정을 기록한 육아일기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제타의 일기에는 100년 전 그녀가 행한 선교사역의 구체적인내용뿐만 아니라 함께 일했던 선교사들의 모습, 한국 여성들이 서양의사의 치료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등도 기록되어 있다. 또 일기에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 자신이구매하거나 사용한 물건과 관련된 영수증이나 카탈로그, 티켓, 주고받은편지를 실물로 첨부하였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일기의 내용을 보완하거나 정정하는 내용을 덧붙여 일기의사료적 가치를 높였다.
『로제타 홀의 일기』시리즈의 특징은 로제타가 기록한 일기의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각각의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수록하고, 그 아랫부분에 한글 번역문을 실어 일기를 읽는 현장감을 극대화 했다는점이다. 아울러일기 뒷부분에는 일기 원문을 그대로 옮긴 영어 원문도 수록하여, 연구자들이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데 도움이되도록 만들었다. 작은 필기체 손글씨로 쓰인 영어로 된 일기를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점을 감안하여 일기를 우리말로 옮긴 에스더 재단의 김현수 박사가 일일이 일기 원문(영어)을 읽고 타이핑하여 수록했다.
로제타 홀 선교사의유족(손녀 필리스 홀 킹과 에드워드 킹 부부)은 2015년 4월 이 일기 원본 6권을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부설 양화진기록관에 기증했다. 양화진문화원은이 일기에 담긴 내용이 100여 년 전 한국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의 생각과 당시 한국의 선교 상황을 잘보여주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하고 6권 모두를 번역 출간하기로 결정했다. 양화진문화원과 홍성사는 2015년과 2016년에 각각 두 권씩 모두 4권을 발간했고, 2017년에는 두 자녀의 성장과정을 기록한 육아일기 두 권을 출간할 계획이다.